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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느헤미야

기억의 책, 그 투박한 사랑의 목록

by 평화의길벗 2025. 11. 27.

느헤미야 7:5-73 기억의 책, 그 투박한 사랑의 목록

우리의 이름이 세상의 명예로운 전당에는 없을지라도,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 안에 우리를 ‘기억’하심으로 존재하게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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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깊어지면 나무들은 잎을 떨구고 자신의 본래 형상을 드러냅니다. 화려했던 수식이 사라진 자리에 남는 것은 앙상하지만 정직한 가지들뿐입니다. 우리네 인생도 그와 같습니다. 소란스러운 세상의 인정과 성취라는 옷을 하나둘 벗고 나면, 결국 하나님 앞에 선 단독자로서의 ‘나’만 남게 됩니다. 그때 문득 스치는 서늘한 질문이 있습니다. “과연 내 삶은 기억될 만한 것인가?”

오늘 우리가 마주한 느헤미야 7장은 언뜻 보기에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인명부처럼 보입니다. 무너진 성벽을 재건한 느헤미야가 펼쳐 든 것은, 화려한 영웅들의 무용담이 아니라 1차 포로 귀환자들의 낡은 명부였습니다. 깨알같이 적힌 낯선 이름들과 숫자들의 나열. 현대인들이라면 건너뛰기 십상인 이 건조한 목록이 왜 성경의 한 페이지를 당당히 차지하고 있는 것일까요?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지만, 성경은 ‘하나님의 기억’입니다. 세상의 역사는 권력의 정점에 선 왕들과 장군들의 이름을 대서특필하지만, 하나님은 바벨론의 포로 생활을 청산하고 예루살렘의 폐허를 껴안기 위해 길을 떠난 이름 없는 순례자들을 호명하십니다. 이 목록에는 제사장이나 귀족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전 문지기, 노래하는 자들, 그리고 ‘느디님 사람’(46절)이라 불리는 성전 막일꾼들의 이름이 빼곡합니다. 심지어 족보가 불분명하여 제사장의 직무를 행할 수 없었던, 세상의 기준으로는 ‘자격 미달’인 사람들(64절)과 그들이 끌고 온 노새와 낙타의 숫자까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투박한 목록이 우리에게 건네는 위로는 실로 묵직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업적’을 계수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 ‘존재’를 기억하시는 분이라는 사실 때문입니다. 우리가 대단한 신앙의 위업을 달성해서가 아니라, 흙먼지 날리는 광야 같은 삶을 견디며 하나님을 향해 한 걸음 내디딘 그 고단한 발걸음을 주님이 귀하게 여기신다는 뜻입니다.

철학자 발터 벤야민은 “과거의 불꽃을 점화하는 재능을 가진 자만이 역사 속에 부는 바람을 느낀다”고 했습니다. 느헤미야가 낭독한 이 명단은 죽은 문자가 아닙니다. 고달픈 이민자의 삶, 비루해 보이는 일상 속에서도 하나님을 잊지 않으려 몸부림쳤던 이들의 숨결입니다.

사랑하는 광양사랑의교회 성도 여러분, 때로 신앙생활이 무미건조하게 느껴지거나, 내 삶이 너무 작고 초라해 보여 낙심될 때가 있습니까? 세상은 스펙을 요구하고 자격을 묻지만, 하나님은 그저 당신의 백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우리의 이름을 생명책에 기록해 두셨습니다. 족보를 찾지 못해 부정한 자로 여겨졌던 이들도, 결국은 하나님의 거룩한 도성을 채우는 일원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을 더 입증해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잊지 않으시는 그 집요한 하나님의 사랑에 기대어, 오늘이라는 시간을 성실하게 살아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아픔, 당신의 눈물, 그리고 당신이 남몰래 삼킨 한숨까지도 다 알고 계십니다. 비루해 보이는 우리의 일상이, 하나님의 기억 속에선 가장 찬란한 역사입니다. 그 은혜가 있기에, 우리 인생은 살만합니다.

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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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 7:5-73 이름 없는 자들의 목록, 거룩한 구원의 증명

포로에서 돌아온 이들의 이름은, 우리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변함없는 은혜와 사랑이 기록된 고요한 증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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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사랑의교회 교우 여러분, 주님의 평안을 빕니다. 성경에는 때때로 우리의 읽기기를 멈추게 하는 대목들이 있습니다. 흥미진진한 서사나 가슴을 울리는 예언 대신, 길고 지루한 족보나 명단의 나열이 바로 그러합니다. 오늘 우리가 마주한 느헤미야 7장의 긴 목록도 그러합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이들의 이름과 수효, 그들이 가진 노비와 가축의 숫자가 건조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화려한 영웅들의 이름도 아니고, 위대한 업적의 기록도 아닌, 그저 “돌아온 이들”의 목록입니다.

이 목록을 보며 우리는 인간의 마음이 기록하고자 하는 것과 하나님이 성경에 새겨 넣으신 것이 얼마나 다른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사람들은 늘 자신의 능력과 성취, 혹은 높은 지위와 재산을 자랑하고 과시하고 싶어 합니다. 우리는 이력서에 밝은 면만을 돋보이게 기록하며, 칭찬과 영광이 있는 곳으로 몰려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포로라는 이름표를 달고, 혹독한 상실감과 공포 속에서 절망의 수렁에 빠졌던 이들의 이름을 기록하셨습니다. 이들이 돌아온 것은 그들의 의지가 강했거나, 힘이 넉넉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들의 귀환은 오직 역사를 갱신하시려는 하나님의 단호한 의지 때문이었으며, 헤세드, 곧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느헤미야서의 이 명단은, 인간의 눈에는 그저 '회색일당'처럼 무기력하고, '덜 떨어진 사람'처럼 보일지 모르는 이들을 향해 하나님이 주시는 존재의 소환장과 같습니다. 이 목록은 우리에게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가 살면서 중요하게 붙잡고 있던 '지혜'나 '힘'이나 '재산'이라는 가치가 파도처럼 밀려오는 고난과 무의미 앞에서 무너져 내릴 때, 우리를 넘어지지 않게 붙드는 것은 과연 무엇입니까?.

바로 여기에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이 있습니다. 느헤미야의 명단에 기록된 이들은 완벽하거나 흠이 없는 '의로운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며, 약속을 잊고 길을 잃었던 연약한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들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마치 창조의 어둑새벽에 울려 퍼지던 능력 있는 말씀처럼, 하나님은 그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주심으로써, 그들의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새로운 창세기의 입구에 세워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여전히 불의와 어둠이 짙고, 경쟁이 삶의 원리가 되어 끊임없이 사람들을 불안의 벼랑 끝으로 내몹니다. 이 지점에서 신앙에 회의를 느끼는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의 경건한 행위가 아니라,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베푸시는 은혜가 구원의 근거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지켜야 할 마땅한 도리보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이 먼저였음을 이 긴 목록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름 없는 자들의 목록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경탄의 능력을 회복하라고 속삭입니다.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일상 속에 깃든 생명의 신비를, 그리고 그 신비를 가능하게 하신 하나님의 선하심과 신실하심을 알아차리는 것 이야말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복입니다. 우리가 오늘을 살아갈 힘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가진 '힘'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절망의 심연 속에 있을 때조차 우리를 붙들어주시는 하늘의 인력(引力) 덕분입니다.

이 길고 지루한 명단은 결국 우리를 하나님의 마음에 닿도록 이끄는 순례의 길입니다. 우리의 이름이 비록 세상의 화려한 기록에는 없을지라도, 하나님의 마음에 새겨져 있음을 아는 자는 낙심할 수 없습니다. 흙탕물 속에서도 기름진 맛이 있고, 가시밭 같은 인생에도 으늑한 맛이 있는 법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그분은 우리가 쓰러진 자리에서 다시 길을 떠나시는 분이시니, 우리는 그 사랑을 의지하여 뚜벅뚜벅 우리 앞의 삶을 향해 걸어갈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평화의길벗_라종렬